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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모르는 척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가 가질 수 없는 마음이 있다. 순순히 인정하려고 해도 쉽사리 마음이 돌아서지 않는다. 소나기처럼 퍼붓고 말 일이지, 그저 지나가면 좋으련만. 지리한 장마가 내 마음에 머무른다. 어쩌면 나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할 때가 있다. 자기 기만이고, 착각이고, 오히려 돌아오면 더 큰 괴로움이 될 그런 생각들을 하곤 한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서는 편안해지지 않는다. 정말 무엇이 맞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마음 속에 들어가 볼 순 없다. 내가 틀리거나 맞추거나 상관없이 그 마음을 털어놓을 리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속 깊은 친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특별히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조심스럽다. 나의 경우는 그 반대라서 항상 내가 무얼 꿈꾸고 있는지, 누가 내 마음 속에 자리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사람이 들어앉을 때도 있고, 사물일 때도 있고, 혹은 영화제가 들어앉아서 온통 나를 흔들어 놓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캐묻고, 깨달아서 그걸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지만 내게는 그런 일이 일상적이고, 도움이 된다. 어제는 영어학원에서 8월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었다. 월, 수, 금 이렇게 일주일에 3일간 2시간씩 뉴질랜드 여인과 한국인 여덟 명이 영어로 대화를 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면 더이상 길에서 생판 남인척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서로를 알게 된다. 한국어라면 감출 수 있는 개인적인 부분들도 영어로 대화를 하자면 표현력이 부족해서 매우 직설적으로 말하게 된다. 그리하여 오십대의 그 남자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고, 부인과 아이들이 캐나다에 있기 때문에 곧 이민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또 어떤 이십대 중반의 여성은 몇 달 안에 회사를 그만두고 캐나다 혹은 호주로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 하는데, 그의 예전 남자친구가 그 일에 반대했었다는 것을 영어로 이야기 한다. 한국어로 처음 만나는 대화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마구 토해낼 만한 어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표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또 단순해진다. 주제에 대해서 좋다, 싫다의 구분이 명확하게 내려진다. 우리 중에 몇 명이 그 영화를 싫어했거나 좋아했거나. 너무 뚜렷하게 드러나서 감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나처럼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쨌든 어제는 이 선생님과 함께 하는 마지막 시간이라고 해서 1시간만 수업을 하고, 나머지 1시간은 근처 커피집으로 갔다. 주제가 정해지지 않은 채로, 게다가 짧은 영어로 한 명의 뉴질랜드 여인과 나머지 여섯 명의 한국인들이 대화하는 광경은 누가 뒤에서 봤다면 웃었을 지도 모르겠다. 중구난방,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 그래도 배웠다고 가끔은 남이 하는 이야기도 들어 준다. 아주 가끔씩. 내가 그 선생님이라면 유치원생들과 대화하고 있는 기분을 느꼈을까? 소풍 나온 것처럼. 간혹 예상하지 못했던 그런 일들이 나를 기쁘게 할 때가 있다.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락하기로 한 사람이 생겼다. 앞으로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단순한 영어로 들어줬던 한 언니와 존칭을 생략하기로 했다. 이 사람은 나의 2005년 8월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언젠가 그녀가 유학에서 돌아와 나를 만나서 지난 일들을 추억할 때, 내가 2005년 8월에 어땠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이야기 해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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