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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라더니 비는 잠깐 세차게 내리고, 내내 끈적거리는 날씨가 계속이다. 몇 일 전부터 빨래에서는 비냄새가 묻어나 끊임없이 새 옷을 꺼내 입어야하고, 세수비누는 푹 삶은 것처럼 퍼져버렸다. 비누가 녹다니,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일인데 오늘은 그게 너무 끔찍하고 싫었다. 일부러 향이 은은한 비누를 직접 골라서 샀는데 이렇게 형편없이 녹아버리다니 괜한 짓을 한 것 같아서 속상했다. 비누를 바꾸면 얼굴 빛이 바뀐다는 것을 안 지도 3년 정도 인가. 비누를 선물용으로 받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돈 주고 사서 쓸 수도 있다는 걸 안 것도 그렇게 얼마 되지 않았다. 혼자 살면서 비누, 휴지, 쌀 등을 사기 시작하면서 비누 종류가 그렇게 많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모양도 각양각색이고, 향도 다르고, 실수로 먹게 되면 그 맛도 달랐다. 최근까지 집에 재고로 남아있어서 잘 써왔던 '두보레'는 그 향이 진하지 않고, 단단하고, 비누거품이 손에서 잘 일어서 좋았다. 박스에 있던 그것들이 동이 나버리고 남은 것은 내가 싫어하는 복숭아 비누이거나 쑥, 인삼 비누, 아니면 너무 딱딱하거나 무른 비누들 뿐이라서 이번 비누는 훼이스샵에서 일부러 샀는데. 장마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 녀석은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 습기가 더 많아지면 어쩌면 다 날아가버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다. 종로를 장첸이 한 바퀴 돌 예정이라고 이메일에서 읽고, 질러버렸었다. 왕가위와 2명의 감독이 <에로스>라는 커다란 제목 아래 중단편 영화를 각각 찍어서 모두 3편의 에피소드를 한 편의 영화로 만들었는데 그 영화 개봉에 맞춰서 장첸이 무대인사를 온다는 내용이었다. 서울극장에서 영화 시작하기 전에 인사하고, 영화 시작되면 단성사(일까)로 옮겨서 또 인사하고, 뭐 그런 식으로 계속 도는데 저녁 8시 30분에 시작하는 시네코아 3관에도 들른다 하여 무조건 예매한 일이 있었다. 장첸을 처음 본 것은 '와호장룡' 영화에서 '호'역할로 참 거지 같은 인상의 미남이었는데 장쯔이를 사랑하여 애타는 열렬한 마음과 거친 외양이 내 마음에 들어왔었다. 그 다음은 '해피투게더' 이 때만 해도 양조위와 닮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늘 본 <에로스>에서는 'The hand'에서 흡사 양조위를 대신해서 쌍둥이 형제가 연기하는 것처럼 닮아있었다. 특별히 그 흰 내의를 입고 있던 뒷 모습과 쓸쓸한 표정은 '화양연화'에 완전히 오버랩됐다. 무대인사는 예상했던 대로 엄청나게 짧았고, 제대로 된 질문을 받지도 않았으며 통역하시는 분도 의전용이었지 관객들을 위한 통역은 아니었다. 만약 영화가 끝난 후에 무대인사가 있었다면 아주 민망해서 피하고 싶은 질문들도 꽤 나왔을 법 한데 다행히 무대인사는 영화 시작전이었다. 사진과 영화로만 보던 장첸은 키가 아주 작아보였는데 (브라운 아이즈 뮤직비디오에서 김현주랑 비슷하지 않았나 싶은데) 실제로는 180에 가까울 정도로 커보였다. 무리하면서까지 오늘 그 자리를 예매해서 보러 간 데에는 특별히 그 사람이 거지 같은 미남이라는 이유가 있었는데 오늘은 너무나 깔끔하게 머리를 자르고, 면도도 하고, 게다가 정장을 입고 나타나서 실망했다. 이상형의 남자가 " 그건 네 생각일 뿐이야 " 라고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해주는 것과 같은 기분이랄지. 덕분에 무대 앞까지 달려나가서 사진을 찍거나 소리 지르지는 않았지만 무대 위에 서 있는 그 사람이 손짓을 할 때마다 얼굴이 훅 달아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 장첸 팬클럽이 몽땅 표를 다 사버린걸까, 매진인데다가 관객의 90%는 여성이었다. 무대인사 중간에 어떤 남자분이 두터운 목소리로 " 사랑해요 " 라고 크게 소리질러서 다들 웃어버렸다. 영화는 예상했던 수순대로 왕가위는 '화양연화 ep2'를, 스티븐 소더버그는 유머와 회색조의 암울함을 적절히 배합한 영화를 만들었다. 마지막 안토니오니씨도 선전했지만 너무 뻔한 이야기에 훌떡 벗고 나와 춤추는 여배우들 때문에 관객들이 대부분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사실 장첸이 오지 않았다면 일부러 예매해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었는데 내 나름대로의 지름신께서 강림하신 걸 인정해야겠다. 그 정도도 지름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전철에서는 내내 잠을 원했다. 얼른 돌아가서 잠자리에 누우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생각하면서 내려야할 정거장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이것 저것 다른 생각들을 정리했다. 겨우 한달이 지난다. 7월이 되면 나는 정말로 홀로설 수 있다. 지금도 하나 어색할 것 없이 잘 살고 있으니, 이제는 퍽 단련되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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