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jeunet 카테고리
이전블로그
이글루링크
최근 등록된 덧글
퇴직하며 돌아보니 '즐겁..
by 진진 at 07/18 맞아요. 그렇죠. by jeunet at 01/12 라고 하셔도 질투는 납니다. by 마지막천사 at 01/10 나두요. 율씨 님 말에 동.. by 크레이지키드 at 01/08 무려 2년하고도...8개월.. by 율씨 at 01/08 포스트 너무 잘 봤어요... by 비비안 at 06/12 쓰게 동감할 수밖에 없는.. by Enid at 05/14 잘 지내지? 보고싶네. by 리안 at 09/09 즉, 아름다운 비극? ^^ by codeinz at 08/10 얼굴은 유덕화, 연기는.. by obiwan at 07/01 skin by 이글루스 |
아침 아버지를 보내고 돌아왔다. 멀리 가시는 것처럼 썼는데 사실은 매일 출근하는 그 길에 동행했다 돌아온 것 뿐이다.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집에서 걸어서 5분쯤 거리에 아버지는 근 7년간 트럭을 주차해두셨다. 매일 새벽 5시에서 6시쯤 트럭까지 걸어가고, 트럭을 항구에서 각종 건설 현장까지 하루 종일 몰고, 밤에는 돌아와서 그 자리에 주차를 하셨다. 기실 그 자리는 주차 구역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들 사이의 2차선 도로다. 아버지의 트럭 바로 옆으로는 아파트 주민들이 사용하는 테니스 장이 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그런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출근하시고 난 후 나와 어머니, 할머니는 그대로 잠이 들어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가 열쇠 수리공을 불러달라고 하셨다. 누군가 아버지의 트럭의 양쪽 문 열쇠 구멍에 이쑤시개를 잔뜩 쑤셔놔서 도저히 문을 열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나는 기가막혔다. 도대체 누가. 어머니와 나는 당황스러웠고, 옷을 갈아입었다. 가봐야할 것 같았다. 어머니 얘기로는 3주 전부터 아버지께서 주차하는 위치에 주차하지 말라고 어떤 사람이 계속 아버지께 말을 해왔다고 했다. 아마도 그 사람일꺼라고 추측하셨다. 그 사람은 왜? 테니스 장을 둘러싸고 반경 500m 정도는 2차선 도로에 밤이 되면 커다란 트럭들이 줄을 지어 주차를 하는 곳이었다. 아버지 차만 이상이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차들도 경고를 했던걸까? 나는 버럭 화가 치밀었다. 친척들이 모이면 우리 아버지를 두고 " 법 없이도 살 사람 " 이라면서 김수현씨 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사를 하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외양일 뿐, 다들 알면서도 눈 감아 주고 있었다. 내가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을 때마다 신고했다면 아버지는 아마 그렇게 단 별만으로도 장군감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다들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인지할 수 없는 나이일 때는 그래도 다행이었다. 심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나와 동생에게는 전혀 꾸지람이나 손찌검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께만 달랐다. 나는 거실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남자친구와의 통화를 방해했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 그러나 가끔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점점 더 심해지다가 결국 내가 개입됐다. 나는 아버지를 말릴 수 있을 만큼 현명하거나 힘이 세지 못했다.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미성숙했기 때문에 항상 대립각이 날카로웠다. 언젠가 앰뷸런스를 불러야했을 때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부모님이 이혼하시길 원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살테니 어머니가 동생을 데리고 사시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를 미친 사람 취급하던 내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놀라셨고, 그 이유를 물으시길래, 그냥 그러고 싶다고 말했다. 마음 속에서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그리고 나와 동생을 괴롭힌 대가를 치루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늘그막에 그를 불행한 노인네로 만들어 주겠다고 결심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은, 부모님은 헤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악다구니에 바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립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대학을 갈 때까지 아버지와 나는 칼만 휘두르지 않았을 뿐 거의 미쳐버린 부녀 사이였다. 나는 어머니를 내 방에 재웠고, 내 방문을 부수려고 두드리는 아버지를 신고해야할지 그냥 내버려둬야할지를 밤 새 고민한 나날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 와중에 동생은 정말 내성적이고, 말 수가 적은 중학생이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싸웠고, 나중에는 울 지도 않으면서 경멸하는 말을 쏟아부을 수 있을 만큼 독해졌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생도 나처럼 독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약한 여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다 내가 지쳤을까, 어머니가 먼저 지치셨다. 나는 대학 입시를 불안하게 치뤘고, 내가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없는 성적을 받았다. 괴로움도 모를 만큼 공황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내가 아무 학과라도 좋으니 집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대학을 다니길 원하신다는 걸 알았다. 나는 담임 선생님께 어디라도 좋으니 특차로 붙을 만한 곳을 알아봐 달라고 했고, 그래서 작년에 졸업한 그 학교 그 과에 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붙었다. 한 번도 그 과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고 할 순 없지만 내게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집을 떠날 수 있었다. 나는 염려가 많았다. 내가 떠난 후에도 아버지가 계속해서 힘을 주체하지 못할까봐 두려웠고, 동생이 고등학생이 되었는데도 아버지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걱정됐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대학 입학 후 2년동안 나는 경제적으로 독립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학비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거나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을 수 없었지만 자취방 월세와 식비는 내가 벌기 위해서 평일에도 주말에도 항상 일을 구했다. 학교 안에서 일을 하면 편했겠지만 시급이 적고, 아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 혜화나 종로에서 일을 구했다. 밤 늦게 별을 보면서 자취방으로 돌아오면 싸늘한 적막이 나를 기다렸다. 초기에는 매일 어머니와 전화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점점 일이 고되고, 공부를 핑계로 집에 잘 가지 않았다. 그 때 내가 아버지로부터 도망쳤다고 생각한다. 동생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머리가 크고, 가끔씩 내게 전화를 걸어서 당황스러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전혀 다른 개체였고, 남매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먼 간극이 있었다. 그 애가 내성적이기도 했지만 아버지께 악악대서 일을 더 시끄럽게 만드는 나를 싫어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어쨌든 내가 집을 떠나면서 우리에게는 알 수 없는 연대감이 생겼고, 그 애가 집에서 있는 일을 시시콜콜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 애가 내대신 아버지와 다툼이 많을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에는 집에 갔을 때 벽에 그 애가 남긴 몇 몇 상처를 볼 수 있었다. 육체적으로 성숙해지고, 지적으로 자라면서 동생도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해야할지 말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차마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를 칠 수는 없었기에 그 애는 벽이나 문을 주먹으로 쳐서 딱 그 주먹만한 상처를 남겨놓았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더럭 겁이 났다. 내가 없는 새에 내가 참아야만 했던 일들이 그 애에게 어떤 커다란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나는 동생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떨어져 살면서 내가 느꼈던 외로움,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평온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외부로부터의 단절감은 적었다고 말해줬다. 물론 그 애가 그 모든 감정들을 수긍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했고 그 애도 나에게 천천히 마음을 열었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우리는 싸웠고, 어머니는 아팠다. 경제적인 상황은 압박해왔고, 나는 2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 멀리 여행을 가고 싶어서였지만 당장 학비를 낼 구멍도 없었다. 휴학하고 일 년 중 여행했던 두 달을 빼고 나머지 열 달은 직장인처럼 일을 했다. 방세를 아끼기 위해서 집에 돌아와 있었다. 마침 동생이 고등학교 졸업반이었기 때문에 내가 있어서 안정적인 마음을 갖길 바란 것도 있었다.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보다 덜 폭력적으로 살게 된 아버지와 머리 큰 아들, 불안한 어머니 사이에서 나는 중간자 역할을 해야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검붉은 피가 주루룩 흘려져 있던 그 거실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놓지 않았다. 동생이 내가 다니던 학교 근처로 입학을하고, 나는 다시 복학을 했다. 그렇지만 그냥 집에서 학교를 통학했다. 아침 저녁으로 왕복 5시간에 가까운 거리였지만 곧 익숙해졌다. 신문과 책과 음악을 가질 수 있는 그럭저럭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아버지는 많이 약해졌다. 그리고 나는 우리 집만 그런 폭력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느 집이나 다 사연이 있기 마련이고, 우리집 같은 경우도 굉장히 많다는 걸 알았다. 모두 참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의 문제였다. 하지만 동생은 대학교에 가면서 아버지와 더 말을 섞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 사람과 닮아지는 것을 경계하는 빛이 역력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애도 도망치고 싶어했다. 그러던 동생이 군대를 가고, 훈련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안았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보고 싶을 꺼라는 눈이었다. 나는 훈련소에서는 울지 않았지만 그 애를 거기 두고 돌아온 집에서 몇 시간을 울었다. 무서웠다. 그 애가 아프거나 다칠까봐보다는 그 안에서 폭력적인 사회를 경험하고 지금보다 더 변해서 돌아올까봐 두려웠다. 나는 군대가 나쁜 영향을 미친 스무살 남자를 서너명 알고 있다. 동생은 그 사람들보다 훨씬 강한 심성을 지녔지만 그래도 걱정이 됐다. 워낙 사춘기가 불안했기 때문에 나는 그 애가 변할까봐 걱정 됐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고, 동생은 잘 견뎌주었다. 이제 내년 삼월이면 제대를 앞두고 있다. 물론 조금은 변했지만 내가 걱정했던 그런 변화는 아주 적었다. 그리고 전화했을 때 가끔씩은 아버지와 통화를 하기도 했다. 휴가를 나왔을 때는 아버지와 같은 방에서 자라고 농담으로 얘기했는데 스스럼없이 그 방에서 자겠다고 해서 나와 어머니를 놀래켰다. 아마 아버지는 더욱 놀랐을 것이다. 군대는 어떤 면에서 내 동생에게 좋은 변화도 주었다. 아버지를 조금씩 용서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경원하고 지난 일이 떠오를 때마다 그가 죽도록 밉지만 동생과는 다른 의미로 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을 그는 그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었고, 죽도록 일만 했다. 어디가서도 대접 받지 못하는 평범한 노동자로 아주 오랫동안 그는 TV가 유일한 취미였다. 그나마 자가용을 가지고 있을 때는 원하는 곳으로 쏘다니기라도 했었지만 어렵게 시작한 사업에 실패하면서 그런 낙마저도 다 빼앗겼다. 그는 친구도 없다. 나이가 그만큼 들면 경제적인 여건이 인간 관계를 결정하기 때문에 그는 평범한 친구도 다 잃었다. 물론 성격탓이 크지만 어쨌든 그가 자신이 선택한 여자와 힘 닿는 대로 낳은 아이 둘 때문엔 포기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그는 자신이 하지 말았어야할 일들을 너무 많이 저질러서 그 여자와 아이 마저도 자신을 싫어하는 걸 알고 있었다. 모두가 그를 미워했다. 다시 오늘 아침에 일을 생각하면, 트럭 앞까지 걸어가면서 나는 주문을 외웠다. ' 오늘은 무사하길, 오늘은 아무 일도 없기를. 제발 부탁합니다. ' 라고 주문을 외웠다. 아버지 성격에 분명히 어제는 하루 종일 스트레스에 휩싸여서 무진장 괴로웠을 게 뻔했다. 오늘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아버지는 새벽 4시에 출근 하기 위해서 걸어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주차 허용 공간에 차를 세울 것이 뻔했다. 그러려면 3시에 나가야한다. 매일 밤 12시에 들어오는 사람이 새벽 2시 반에 나가야 한다면 나는 아버지가 그 일을 안하셔도 될 만큼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알아봐야한다. 나는 아버지가 미웠지만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기 위해서 치른 희생을 이제는 충분히 인지하기 때문에 그를 불쌍히 여긴다. 사랑이 부드럽고, 유연하고, 행복하기만 한 거라면 우리 부녀지간에는 사랑이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그와 길을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하면, 하루 종일 트럭에서 라디오하고만 얘기하던 아버지가 나에게 폭포처럼 쏟아지는 수다를 털어내게 만듬으로써 우리는 사랑에 한 발자욱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다행히 트럭에 열쇠는 잘 꽂혀서 돌아갔다. 나와 아버지는 동시에 안도했을 것이다. 나는 트럭에 올라타는 아버지를 향해서 말했다. " 내가 밤새 트럭에 타고 있다가 그 새끼가 또 와서 지랄하면, 사진 찍어가지고 경찰서에 보내야겠어. 이런 XX 새끼. " 아버지는 내가 그런 험한 말을 하는 걸 처음 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웃었다. 트럭을 등지고 돌아오는 내 머리 뒤통수로 아버지가 뭐라고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뭐라고 또 수다를 떨고 있었을 것이다. ' 뭐ㅡ, 그럴꺼까지야. 따지고 보면 여기가 주정차 위반 구역이고, 사람이 다 그런건 아니고 어쩌고 저쩌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