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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참기 힘든 날은 어제였다. 오늘부터는 아마 매일 매일이 기록을 새로 쓰는 것이리라. 우리가 만나는 동안 내가 진심으로 당신과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세번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길었던 헤어짐의 시간은 겨우 일주일이었다. 내가 북경으로 출장을 가거나, 싱가폴로 여행을 갔을 때도 나는 당신에게 간헐적으로라도 일주일에 3~4번은 연락을 했었다. 그런 우리가 내가 헤어지자고 말한 뒤에 일주일이나 연락하지 않고 서로에게 말을 걸지 못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헤어짐은 그렇게 다시는 만나지 않아야만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심리적으로 나에게 일주일은 굉장히 길게만 느껴졌다. 오랜 친구들을 일부러 약속하여 만나고, 자주 만나지 못하던 사촌동생을 불러서 영화를 일부러 봤지만 항상 집에 돌아오면 당신이 퇴근 하는 시간 이전이었다. 주말에는 그런 마음도 들었다. 우리 집 앞에 어쩌면 당신이 와있는게 아닐까, 어쩌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나한테 화라도 내지 않을까. 그래서 달팽이처럼 걷던 내 걸음도 집 앞에서는 조금 속력이 붙었다. 그런 나에게 병원에서는 나에게 간 수치는 정상이며, 간 때문에 이렇게 아픈 건 아니라고 확인해줬다. 처음도 아니다. 사랑이 끝나면 아팠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졌을 때는 가장 아팠고, 그보다 조금 덜 사랑한 사람과 헤어졌을 때도 조금 덜 아팠지만 그래도 아팠다. 공부하는 시간에는 멍했고, 시험보는 시간에는 한 줄로 찍고 누워있었다. 반에서 10등 안에 드는 조금 좋은 성적이 좋은 날도 있었지만, 헤어진 후에는 반에서 꼴찌도 해봤다. 남들은 유난하다고 해도 그 때는 그게 그렇게 심각했다. 직장인이 되어서 일을 하는 동안에는 헤어지게 되면 일을 잘 못했다. 당연히 공사를 구분해야 되는 건 나도 잘 아는데, 그게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사실 생각이라는 게 멈춘다. 사랑했던 일을 멈추면, 사람들이 사는 것도 멈추고, 시간이 가는 것도 이상하게 느려진다.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점점 그 멈춤이란 것을 짧게 지나가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짧게 지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아프더라. 예전이었다면 생각지도 않았을 어이없는 짓도 해봤다. 차마 글로 옮기기 부끄러울 정도로 나쁘게도 해봤다. 그런데 그것도 잘 안되더라. 사람의 마음이 처음부터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일까, 내 안에 없는 걸 내가 있다고 우기려니까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계속 아팠다. 몸은 좀 나아졌지만, 점점 더 수치로 나타나는 건강보다는 마음에 빗금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울지 않아도 되는데 한 번 울고 나면 좀 나아지는 그런 침잠 어쩌면 이렇게 조금씩 내 안에서 5년(혹은 6년)의 세월을 지워내기를 벌써 시작했나보다. 전주에 다녀온 사진을 언니가 올려놨다고 해서 보았는데, 그 사진들 속에 아주 환하게 웃는 너와 내가 있었다. 만약에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정리한 이후라면, 나는 언니에게 그 사진들을 지워달라고 해야될 것같다. 그런데 아직은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진이 예쁘다고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예쁘다, 너무 예쁘다. 반짝인다. 그 사진 속에서 너도 나도, 서로 보는 눈빛이 반짝인다. 그 여행 이후로 겨우 석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너무 오래 전 일인 것 같다. 낯설고 두려운 내가 여기 있다. 3시 39분에 전화가 걸려와서 15분 57초 동안 통화를 했다. 6년 연애를 부정하기에 이렇게 짧은 시간이면 되는 거였구나.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빨리 정리가 되었다. 아니, 이번주에만 전화를 하지 말자고 했지만 나는 그 전에 이미 여행 예약을 취소하려고 한다는 말도 내뱉었다. 오늘 이야기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전화가 걸려왔고, 충동적이었지만 침착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왜 나는 "사랑해"라는 말도 하고 싶었을까. '아직은 너에게도 기회가 있어, 나를 잡아줘.'라는 메세지를 주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목구멍까지 걸려있던 그 말은 나오지 않았고, 나는 너에게 더이상 기회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랑했던 날들이 너무 많아서 지금 이렇게 말하는 나를 상상도 못했다.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너의 외할머니께 인사드리고 돌아오는 날이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너가 방학 때마다 내려와서 누나와 함께 남겨지고 부모님께서 2주일 후에 데리러 왔다던 외갓집에서 너에게 안녕이라고 말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그런 마음은 정말 아니었는데. 거기 앉아있는데 현기증이 나서 나는 밖으로 나갔다. 그 집 앞을 조금 걷는데, 햇빛이 너무 따가웠다. 제주에서 익숙해진 터라 조금은 나았던 것 같다. 그대로 견딜만한 데까지 걸었다. 차가 없는 2차선을 걷는데, 왼쪽에 있는 밭에 무언가가 누워있었다. 고양이, 작은 걸로 보아서 새끼 고양이 같았다. 섬찟했다. 조금 더 걸어가서 그 쪽을 보니, 밭 한가운데에 새끼 고양이가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파리들이 모여있었다. 죽었나보다. 나는 잠깐 망설였다. 이 와중에도 나는 그 고양이의 주검을 어디다가 묻어줘야하는 걸까 생각했다. 외할머님께서 혼자 사신다고 했는데, 그 밭이 외할머님네 밭이면 얼마나 놀라실까 걱정됐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나는 몹시 피곤했다. 너무 몸이 아팠다. 그래서 이따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그 집 식구들에게 말을 하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차도를 건넜다.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그 때쯤인가, 내 뒤에서 그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나를 찾으러 나온 것이겠지. 나는 버스 시간표를 훑어봤다. 홍성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 같았다. 한 시간에 두 대씩은 있었다. 나는 대비했다. 내가 거기서 혼자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경우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정말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네가 말했다. "여기서 뭐해? 왜 여기까지 나왔어" 나는 대답했다. "버스 타고 갈까 하고" 내가 이렇게 말하자, 너는 터무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나를 여기다 데려놓은 것은 너와 너의 가족들이고, 나는 지금 너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내가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하니까 그것에 대해서 너는 어이없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다시 지금, 나는 울지 않는다. 어쩌면 제주에 가기 전, 이미 다 울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제주에서도 혼자 여행하면서 몇 번인가를 울었다. 너는 내가 그냥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거기서 무언가 변했다. 마지막으로 묵었던 숙소의 2층은 북카페였다. 북카페는 실내가 모두 유리창으로 닫혀져있어서 매우 답답했다. 하지만 그 끝에 있던 테라스는 마치 바람을 그 쪽으로만 불게 하려고 실내를 모두 답답하게 한 것인양 무척 시원했다. 바람은 다 그리로만 통했다. 거기서 나는 잠시 동안 또 울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강정에, 무서워서 가지 못한 게 미안했고, 혼자 떠난 여행에서 설레임을 느낀 내가 두려워서 울었다. 바람이 계속 나를 통과해갔기 때문엔 오랫동안 울지는 않았다. 바람이 눈물을 자꾸 닦아서 나는 그만 멈출 수 있었다.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열 걸음 정도 떨어져있는 커다란 나무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라고 만들어놓은 것이 틀림없는 4인용 야외 테이블에 앉아야겠다고 말했다. 너는 나에게 돌아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냥 묵묵히 그 테이블에 앉았다. 너도 거기에 앉아서 나를 바라 보았다. 그 순간, 나는 말할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 "나한테 할 얘기 있어서 나온 거 아니야?" 그렇게 말했다. 너는 잠깐 망설이다가,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면서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꼭 그래야겠어?" 조금 짜증이 섞여있었다. 내 걸음을 보고는 몸이 많이 아픈채로 보였기 때문인지, 그 전에 나에게 했던 것처럼 화를 내지는 못했다. 그저 표현한 것 뿐이었다. 그러지 말아달라는 말을 다르게 한 것 뿐이었다. 나는 그걸 알았다. 알았는데도 나는 너에게 결국 그 말을 하고 말았다. "그게 다니? 그럼 내 얘기도 할게. 내가 못났다. 다 내 탓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못하겠다. 나는 여기까지다. 나는 더이상은 참을 수 없다. 나는 너하고 더 갈 수가 없겠다. 미안하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너의 가족들에게는 최선을 다해보겠다. 하지만 이게 내 한계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일어나서 다시 그 집으로 비틀비틀 걸어 갔다. 햇빛이 정말 쨍쨍 나서, 어지러웠지만 멈추지 않고 걸었다. 그 집에 들어가서 나는 그 사람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와 누나, 누나의 남편, 누나의 아기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대했다. 그 사람들은 내가 낯설었겠지만 적어도 나는 더이상 후회나 미련은 없을 만큼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그 집에 다시 들어온 건 그것 보다 조금 후에. 나는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이미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서 그냥 앉아있는 것만해도 너무 괴로웠다. 그저 픽 쓰러져도 이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버텼다. 그 가족의 외할머님댁 방문을 나는 그렇게 견뎠다. 내가 너무 아픈 기색을 보이자, 점심 먹고 안면도로 놀러 갔다 가거나 김좌진 장군 생가에 들렀다 가면 어떻겠냐던 누나 부부의 나들이 계획도 모두 취소되었다. 그 사람의 어머님은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먹지 못하고, 혼자서 늦잠을 잤던 매형이 점심을 다 같이 먹는 것까지만 허락하고 곧장 그 집을 나섰다. 점심밥을 먹여 보내는 외할머님의 표정이 훨씬 밝았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지, 라는 말씀도 하셨다. 나는 마지막에 그 집을 나오면서, 외할머님께 그 사람의 어머니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엄마, 건강해야지. 그래야 OO이 결혼식에도 오지. XX 결혼할 때는 못왔잖아요. OO이 결혼할 때는 와야돼" 그 결혼식은 내가 시월에 하기로 되어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외할머님께 정말 죄송했다. '죄송합니다. 아마 OO군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 거에요' 라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긴걸까, 내가 제주에 여행을 혼자 간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집을 정해놓고, 내가 변덕을 부렸기 때문에 나에게 실망한 그 사람과 다툰 일이 문제였을까, 내가 구한 집을 퇴짜놓은 그 사람이 너무 미웠을 때부터 시작된걸까. 아니면 정말 가족들과 있을 때는 나를 전혀 보호하지 못하는 그 사람이 실망스러워서였을까. 내가 아직 결혼을 하기도 전부터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한 점 허물없이 대하는 그의 가족들이 두려웠던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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